PAPER 김원 두령님 (사진출처- 한국 문화예술 교육진흥원)
실제로 김원두령님을 만나기 전까지는 적잖이 겁을 먹었다. 특히 나는 여러 경험을 거치며 인터뷰를 여러 번 했던 탓에 인터뷰를 가기 전에 쉬이 겁을 먹거나 떨려 하지 않았다. 김원두령님을 만나기 전에 내가 두근거렸던 이유를 말하자면 내가 좋아하고 특별하게 여겼던 페이퍼라는 잡지의 발행인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사사로운 감정이 개입된 잡지의 발행인. 즉 페이퍼의 짱을 만난다는 것은 나에게 큰 의미였다. 또한, 김원두령님은 내가 인터뷰 했던 분들 중 나이가 많은 축에 속했다. 사진 속에서 본 그의 백발머리는 '웃어른'을 만난다는 생각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고 그것은 내게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긴장은 나를 화장실로 향하게 만들었다. 그래, 원치 않았던 그 타이밍. 두령님은 내가 화장실에 간 사이에 벌써 테이블에 앉아 계셨다. 두령님은 컨버스 운동화에 백팩을 멘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내 짐작엔 어제도 운동화에 백팩을 착용했다고 해도 낯설지 않은, 굉장히 익숙하고 편안한 차림 같았다. 우리는 잠시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 "인터뷰 질문지를 준비해왔는데 드려도 되요?"라고 묻자 두령님은 "주면 좋지요"라고 했고 우리는 질문지를 건네 드렸다. 두령님은 질문지를 진지하게 훑어보고는 "이건 메일로 답변해주면 되나?"했다. 그건 원치 않았다. 단지 지면 인터뷰를 하고자 두령님을 뵙자고 한 게 아니니... 페이퍼는 어떻게 인터뷰를 하냐는 질문에 두령님은 대뜸 우리에게 "몇 시에 일어났어요?"라고 물었다. 나는 "9시반이요"하고 답했고 두령님은 이런 식으로 인터뷰를 한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인터뷰를 이끌어내고 진짜 핵심 질문은 3개 정도 준비해간다고. 조금은 부끄러워졌다. 우리가 준비해간 정형적인 인터뷰가.
두령님은 우리 그룹에 대해 궁금해했다. 우리가 뭐하는 애들인지. 솔직히 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되는대로 일단 설명했다. "제가 이 그룹을 처음 만들었는데요. 처음에는 브랜드에 대한 스터디 그룹으로 시작을 했어요. 그 이후에 브랜드에 대해 실천적인 것을 해보자 해서 이것저것 하고 있는데... " 내 말을 들은 두령님은 우리 그룹의 방향성이 모호하다고 말했다. "솔직히 제 생각에도 방향성이나 그룹의 목적이 뚜렷하지 않아서 걱정이에요. 지금 모임에 속해있는 사람들이 거의 다 4학년이어서 다들 중요한 시기를 겪고 있는데 확고한 무언가 없이 사람들을 이끌려고 하니까 굉장히 부담도 되고...."라고 말하자 은지는 "경아 언니 어깨가 무거워요."라며 자신은 계속 나를 믿고 따르겠다고 했고, 수현이도 내 편이라며 나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우리의 얘기를 들은 김원 두령님은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라는 생각을 팀원들에게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면 힘들어도 끝까지 같이 갈 수 있는 거라고. 페이퍼에선 내부 사람들끼리 트러블이 없냐는 나의 질문에 페이퍼 내부에서도 분명 크고 작은 트러블이 발생하지만 팀원이 탈퇴하거나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고 했다. 내가 가치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는 것...
두령님은 너네 넋두리하러 온 것 같다며 내가 너희를 인터뷰 해야겠고 했다. 그 말에 이어 말을 놔도 되냐고 물었다. 우리는 그 말이 끝나자마자 전체 합창으로 "네~~~"를 외쳤다. 두령님은 팔을 뻗어 의자 위에 놓여있던 백팩을 뒤적거리셨다. 곧 맥주잔이 흐트러져 있는 식탁 위에 녹음기, 종이와 연필이 세팅되었다. 두령님은 우리 셋에게 이름을 물었다. 아차! 우리는 아직 각자의 이름도 소개하지 않은 것이다. 이름과 대학, 전공, 형제 관계를 물은 두령님은 페이퍼에서 많이 본 익숙한 글씨체로 우리들의 정보를 종이 위에 슥슥 써내려 갔다. 물 위에 떠있는 소금쟁이처럼 그의 글씨가 종이 위에서 유연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별거 아닌 글씨 하나에 우리는 아이처럼 감탄했다.
그 후 두령님은 우리 모두에게 질문을 했고, 우리의 이야기 꽃은 그때부터 피우게 되었다. 인터뷰에 대한 부담이 해방된 시점, 두령님이 우리를 좀 더 편하게 대하게 된 시점. 분위기의 변화와 함께 우리가 마시던 술도 맥주에서 막걸리로 변했다. 두령님이 우리 셋에 대해 알게 된 것 만큼 나도 김원 두령님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낯설어서 두려웠던 미지의 세계에 대해 하나 둘씩 알게 되자 더 이상 낯설지도 두렵지도 않았다. 그는 따뜻했고 친구 같았고 한 명의 소년 같았다. 우리 인터뷰의 목적을 떠나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사람 김원에 대한 것이었다.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 내 또래에 무엇에 열광하는 사람이었는지. 두령님은 어렸을 때(내 기억으론 5살)부터 그림을 그리는 걸 좋아했고, 곧 잘 그렸다고 했다. 어릴 때 꿈은 화가라고 했다. 대학에 들어와서는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을 계속 그렸고 연애도 많이 했고 술도 많이 마셨다고 했다. 현재 아내분과의 러브스토리도 들었다. 사실 난 이 얘기가 가장 흥미로웠다. 두령님의 아내 분은 친구의 여자친구의 친구라고 했다. '친구의 친구를 사랑했네~'가 아닌 친구의 친구의 친구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첫 만남은 이러하다. 친구 커플이 두령님과 아내 분을 함께 불러서 첫만남을 갖게 된 것인데, 두령님은 그 때 아내 분이 입었던 연두색 바바리코트가 인상적이었다고 회상했다. 지금 생각해도 연두색은 바바리코트의 컬러치고는 굉장히 독특하다. 성격도 의상만큼 독특하고 색깔이 강했다고 말했다. 그 후 두령님과 아내 분은 4년간 연애하고 결혼에 골인했다.
서로 오고 가는 대화 속에 우리 넷은 막걸리를열병도 더 마신 듯 했다. 안주가 떨어질 때 마다 두령님은 메뉴판을 주며 먹고 싶은 것을 골라보라고 했다. 하아 얼마나 아빠 같은 자상함인가! 두령님의 자상함 탓에 우리는 술도 안주도 정말 원없이 배터지게 먹었다. 어디 술과 안주뿐이랴.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도 원없이 다 토해낸 듯 싶다. 외로움에 관한 얘기, 가족 이야기, 사랑 얘기 등등등. 두령님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온 건데 너무 우리 얘기만 한 건 아닌가 싶어서 죄송스러웠다. 다시 한번 두령님을 만날 기회가 생긴다면 그 땐 우리가 술을 한잔 사드리고 싶다. 두령님이 말씀하시길 매일 술을 드신다고 하는데 술은 안되겠다. 그렇다면 건강차라도 대접하고 싶다!
결국 그 기나긴 술자리는 술만 먹으면 혼잣말을 해대는 한 친구가 KO된 후 끝이 났다. 그 친구를 부축하며 두령님과 함께했던 시간을 회상해보았다. 두령님은 우리보다 나이가 많고 페이퍼라는 전 세계에서 하나밖에 없는 잡지를 발행하고 있는 사람이지만 젠체하거나 윗사람이 아랫사람 타이르듯 하는 충고를 절대 하지 않았다.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우리 시선에서 공감했고 다독였다. 페이퍼는 '위로'라고 정의 내렸던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다시금 깨닫는 순간이었다. 페이퍼가 오랜 시간 동안 독자에게 사랑 받는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닐까 싶다. 잡지도 하나의 유기체이기에 그것을 만드는 사람의 가치관이 녹아나는 것이라고. 따뜻한 사람들이 만드는 페이퍼는 따뜻한 가족의 품에 자란 아이처럼 따뜻함이 베어나올 수 밖에 없는 거라고.
Interview. 이은지, 한수현, 이경아
Editor. 이경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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